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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막연히 죽고 싶을 때가 있다. 죽고 싶은 이유가 무엇이든 죽음을 생각하는 건 때로 감미롭다. 만족스럽지 않은 삶의 상태를 벗어날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라도 죽음이라는 추상적 상태는 마지막 보루로서의 출구를 마치 희망처럼 제시한다. 어둠 속에서 아주 몹시도 지루하고 끔찍하고 진부하고 재미없는 영화를 보다가 어느 임계점을 만날 때가 있다. 됐어. 여기까지야. 이제 그만. 이만하면 충분히 된거야. 중간에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그렇게 캄캄하게만 느껴지는 삶 밖으로 걸어나오는 데 걸림돌이 되는 건 다름 아닌 사후에 남겨질 육신이다. 삶이 떠나고 죽음이 남은 자리에 죽은 몸도 함께 남는다. 누워 꼼짝 못하는 몸은 삶이 지속되는 동안에도 삶이 끝난 다음에도 스스로의 의지대로 어찌할 수 없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서, 죽음보다 끔찍한 죽는 순간의 공포를 견디고, 죽는 일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 고작 그 몸에 대해 조작 가능한 것이라고는 누울 자리를 찾는 일 뿐이다. 여자가 일하는 접대업소가 인테리어 공사로 쉬는 기간 여자는 죽어 누울 자리를 찾아 온천 도시로 가서 여관에 숙소를 잡는다. 숲속의 아늑한 구석 쉽게 눈에 띄지 않을 곳 죽기에 안성맞춤이다. 만일 셋방에서 죽는다면 세든 사람들 모두에게 구경거리가 될 것이기에 그녀는 이 곳에서 홀로 죽을 작정이었던 것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 두 남녀가 잔듸밭에 누워 밀회를 즐기고 있다. 죽기로 작정한 장소에서는 죽음의 그림자 대신 남녀의 사랑과 웃음이 흘러나온다. 여자는 왜 죽기로 작정한 것일까. 당대 여성에게 자살 동기는 남자의 배신이라는 상투성에서 벗어나기 어렵지만 그 상투성마저도 오랜 시대에 걸쳐 절대적으로 취약했던 여성의 위치를 생생히 드러낸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여러 영역에서 금기시되고 제한된 상황에서 경제력을 갖기 위해 평생 의존할 남자를 찾는 데 실패한 여성이 할 만한 일이 접대와 관련된 일만큼 흔치 않았으나 접대는 나이와 함께 소멸되어 가는 성적 매력을 뜯어먹고 사는 직업이었으므로 더욱 더 남자의 순정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죽으려고 맡아놓은 자리에 남녀가 있으니 여긴 내가 먼저찜했으니 좀 비켜주실래요? 할 수도 없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와도 또 그 다음 날 다시 와도 그들은 아침 일찍도 와서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죽을 자리에 누워 있는 남녀의 웃음소리는 여자가 죽기로 작정한 이유를 독자들에게 설명할 계기가 된다. 시대의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한 한 접대부는 자신을 향한 남자의 순정을 딱하게 여겼지만 그 순정에 중독되어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을까. 남자의 성적 욕구에 기대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순정으로 착각하는 오류로 인해 상처받는 게 운명이라면 이번 생은 이 형편없이 상투적이고 진부한 인생극장에 반전을 기대하며 낭비하지 말고 비상구라고 쓰인 희미한 표지판을 따라 성큼성큼 극장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이 다음 생에(혹시 있다면) 더 득이 될 것이다. 어차피 이번 생에 쌓이는 업보는 이번 생의 사회에서 통용되는 윤리적 가치와 규범으로 판단될 것이기에 더 살면 살수록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악이 선보다 클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지 않은가.하지만 남녀의 웃음소리는 결국 자신의 웃음소리다. 환상과 꿈과 현실의 모호한 관계가 밝혀지기까지 여자의 심리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죽음에 이르는 삶의 권태라면 조금 더 일찍이 그러니까 젊고 천재적인 작가들이 폐결핵으로 푹푹 쓰러져 죽어 나가던 시대의 상투성이지 가속되는 산업화의 속도에 맞춰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대한민국 경제를 아래로부터 떠받들던 시대의 정서가 아니었다. 산업화의 그늘 속에 소외되고 외면된 그 죽음마저도 구경거리와 뒷담화 소재에 쓰일 하찮은 사람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의 어둠 속에서 허락되지 않은 사랑을 하고 더더욱 허용되지 않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그들과 우리의 경계를 나누었으며 그 경계는 얼마나 깊고 넓고 큰 것이었으며 또 이쪽과 저쪽은 얼마나 우연히 결정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자신의 웃음소리와 그 속에 배어 있던 희망이 사랑이 이미 두 남녀의 죽음으로 밝혀지면서 웃음과 희망과 사랑이 죽은 것이므로 이제 다시 돌아가서 그것 없는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3일동안 여성의 환각과 잠 속의 꿈과 현실 사이의 몽롱함에서 깨어나서 그녀가 향할 곳이 그 시대에, 어느 곳이었을까
최인훈의 등단작인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 라울전 을 포함, 단편소설 15편을 모았다. 자신의 우상이었던 그 의 집이 정신병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기환멸을 느끼는 내용의 우상의 집 , 내내 귀에 들렸던 여자의 웃음소리가 자신의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 앞에서 황급히 되돌아서는 웃음소리 등 젊은이들의 고통과 어두운 의식 세계를 드러내는 최인훈의 초기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
라울전
우상의 집
9월의 달리아
수
7월의 아이들
열하일기
금오신화
웃음소리
국도의 끝
놀부뎐
정오
춘향뎐
귀성
만가
해설_믿음의 세계와 창의 문학/오생근
해설_창형 인간과 욕망의 삼각형/김형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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