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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동안 이 땅은 우리 가족의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와는 다른 생김새를 지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이 이 땅에 들어왔다. 앞으로 이 땅은 그들의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나라를 세웠고, 우리를 자신의 나라로부터 보다 멀리 내쫓기 위해 무엇이든 하려 들었다. 나에게 주어진 땅은 점점 좁아졌다. 우린 우릴 지켜줄 나라를 갖지 못했다. 저들이 나를 향해 포탄을 쏘아댈 때 나는 겁에 질려 울부짖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몇몇 용감한 이들은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우리를 지키고자 나섰다. 나는 그들의 선택을 온전히 지지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일종의 무기력에 빠져 있다. 그들은 그들이 행할 수 있는 걸 택했을 따름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오묘하다. 성서는 그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는 이유로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모두가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걸까.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을 허락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유대인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더니 그래서 가능했던 일일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반세기의 시간이 흘렀지만 평화는 요원하다. 어느 한 쪽이 완전히 축출된 다음에야 조금은 고요해질 것 같다. 물론 양자 모두가 땅에 대한 강력한 애착을 보이고 있으므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온 것마냥 가슴이 답답하다. 과연 해법은 없는 것일까. 아모스 오즈는 이스라엘인이다. 저자 약력은 그를 소설가이자 평화운동가로 소개하고 있다. 그의 부모는 동유럽에서 거주했으나 곧잘 이방인 취급을 당했다. 저자의 부모에게 이스라엘은 모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국가였다. 저자는 부모에게 반항했다. 키부츠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스스로를 가다듬었다. 공동소유·공동육아·공동식사·직접민주주의 등 독특한 시스템에 작동하는 키부츠에서 그는 보통 이스라엘 인들이 지닌 것과는 다른 사고를 키웠다. 그의 눈엔 ‘예루살렘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무나 붙들고 정치, 윤리, 역사, 종교 등의 논쟁을 주고받는 사람들. 그들 중 상대의 말을 듣는 이는 아무도 없다. 모두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만 한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십자가형을 선사하거나 타인을 십자가에 매달거나, 아니면 둘 다를 행하려는 듯 군다. 저자가 감지한 예루살렘 증후군은 이스라엘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 예루살렘 증후군을 앓는 사람을 달리 표현하자면 저자가 책의 제목으로 택한 ‘광신자’ 즈음일 듯하다. 믿음이 너무도 강렬한 나머지 아무런 의심도 못하는 사람들, 타협도 관용도 그들에겐 비굴로 읽힌다. 모 아니면 도 심정으로 그들은 나와 다른 이들을 공략한다. 저자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분쟁이 심각한 건 아니라고 보았다. 그에게 팔레스타인 분쟁은 종교전쟁도, 문화전쟁도, 그렇다고 서로 다른 두 전통 간의 불화도 아니다. 이 집이 누구의 소유물인가를 따지는 ‘부동산 쟁의(realestate dispute)’일 뿐이므로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해법이 너무도 단순하게, 동시에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 팔레스타인은 어느 누구에게 전적으로 속할 수 없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모두에겐 이 땅에 거주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합리적이어서 일방적으로 한 쪽의 양보를 요구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 광신자에게는 불가능하겠지만, 일단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속이 쓰리고 마음이 아프겠지만,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해 가며 타협점을 찾은 후에 재빨리 헤어지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이혼’에 해당한다고 저자는 보았다. 그런데 이 이혼은 조금 독특하다. 법적으로는 갈라섰지만 부부는 계속 서로를 응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혼 전과 마찬가지로 한 채의 집에 살아야 한다. 안방은 내가, 건넛방은 네가. 부닥칠 때마다 다툴 게 분명하므로 최대한 동선이 겹치지 않게끔 현명하게 집을 분할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유연한 사고라고는 할 줄 모르는 광신자들에게 너그러움을 선사하기 위한 문학과 유머까지 더했다. 과연, 이 땅에도 평화가 찾아올까. 광신자들이 제 믿음의 그릇됨을 깨달을 수 있을까. 그리 쉬운 문제였다면 왜 아직도 해결을 못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너무 어렵게만 여긴 게 오늘날 혼란의 원인이려나.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 라빈과 아라파트는 과연 이를 어찌 해석할지, 말없는 망자가 오늘따라 그립다.
이 책은 짧지만 강한 두 개의 에세이를 엮은 것으로, 2002년 독일에서 강연한 내용을 편집하였다. 강연이 이루어진 당시에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자치구를 재점령하고, 테러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군사 공격을 자행하던 때였다. 오즈가 주창하는 평화 공존의 길이 점점 요원해 보이던 시기에 그는 이 글들을 통해 중동의 평화, 나아가 세계 곳곳의 싸움에 관한 우리의 관심을 촉구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첫 번째 에세이 정의와 정의의 충돌 에서 오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발단이 되었던 왜곡된 역사의 뿌리를 파헤치고, 비극의 양상을 살핌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종교전쟁도 아니고, 문화전쟁도 아니며, 서로 다른 두 전통의 불화도 아니라고 단언한다. ‘이 집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단순한 ‘부동산 쟁의’라고 생각하는 그는 그래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영토 문제는 공정한 배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두 국가 해법’이다. 이는 대략 6일전쟁 이전의 국경선으로 되돌아가 양측이 독자적 국가를 세우고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방법이다.
그러나 해결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이 둘의 싸움이 인종차별이나 인권 투쟁, 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손쉽게 선인과 악인을 가를 수 있는 충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분쟁을 양측이 모두 자기 민족의 유일한 고향을 되찾고자 벌이는, 정의(right)와 정의(right)의 충돌이라고 부른다. 또한 똑같은 압제자를 둔 희생자끼리의 싸움이자, 유럽과 아랍에서 쫓겨난 난민끼리의 싸움이다. 순진한 이상주의자들이 주장하듯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간의 오해를 푼다고 해서 오래된 갈등이 해결될 리 없다는 게 오즈의 생각이다. 그는 서로 원하는 것이 명명백백한 싸움에서 ‘두 국가 해법’이 가장 현실적이면서 평화로운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공정하고 적절한 이혼’에 비유한다.
오즈는 이 과정이 굉장히 고통스럽겠지만 지옥 같은 삶을 겪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한다. 또한 막 병원에서 깨어나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깨달은 환자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두 두 개의 국가로 분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점점 인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혼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양측이 서로 역사적, 감정적 연결 고리를 가진 땅에 대해 똑같은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걸림돌이 되는 것이 광신주의다. 두 번째 에세이 광신자를 어떻게 치유할까 는 광신주의 해결책에 관한 것으로, 무엇과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독선자인 광신자들에게 오즈는 상상력과 문학, 유머를 처방한다. 상상력은 타인의 입장에 서보는 공감 능력으로, 나와는 다른 입장이나 시각이 존재할 뿐 아니라 어쩌면 그것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셰익스피어, 고골, 카프카 등의 문학작품은 광신주의를 억제할 좋은 교재라고 말한다. 또 다른 광신주의 면역제로서 유머는 타자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제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도 어떤 측면에서 인생은 조금은 우스꽝스럽다는 진실을 알고 있는 힘이다. 말다툼할 때나 불평할 때 서로를 상상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는 광신자 유전자와 맞서는 데 조금이나마 효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문(나딘 고디머)
정의와 정의의 충돌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비슷한 역사 체험
타협의 반대는 광신주의와 죽음
이스라엘 영토 확장을 위해서는 싸우지 않아
궁극의 악은 전쟁이 아닌 침략이다
똑같은 압제자를 둔 피해자끼리의 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정하고 적절한 이혼
두 국가 해법과 최종적 분쟁 해결
선결되어야 할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공동의 기념비를
친이스라엘 혹은 친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친평화주의자
광신자를 어떻게 치유할까
빈곤과 부의 충돌, 혹은 광신과 관용의 싸움
예루살렘 증후군
지하실의 검은 표범
광신자에게 배신자는 ‘광신자가 아닌 사람’
이승과 천국을 거래하는 광신주의
동일주의와 획일주의의 정체
세계 유치원의 도래
이타주의와 광신주의의 닮은꼴
집 안에서 싹트는 광신주의
팔레스타인 문제의 본질은 부동산 쟁의
상상력과 문학이라는 백신
광신자 처방전으로서의 유머
구세주와 할머니의 지혜
섬이 아닌 반도로서의 인간
제네바 합의에 덧붙여
아모스 오즈와의 인터뷰
옮긴이의 말
아모스 오즈 연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연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영토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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