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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연구자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가 문답식 강의로 만든 미술사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연히 저자가 "조반니 벨리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도 좀 읽어보기도 했는데, 이 책도 미술사 책 중에서는 유명한 편이라서 찾아 읽게 되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거의 입문서 수준 정도였고, 오히려 서양미술사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의 일부를 좀 더 쉽게 풀어놓은 정도였다. 이 책은 두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먼저 서기 1000년부터 불기 시작한 기독교 순례 열풍을 따라간다. 세기말 순례열풍에 따라 도시마다 새로운 교회가 지어지고 특히 대규모 교회는 대부분 조각으로 장식되었기 때문에 건축과 미술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고대 로마의 전통을 따르자는 로마네스크 양식이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11세기말부터 200년간 계속된 십자군 원정길을 따라가는데, 이를 통해 유럽으로 들어온 비잔티움과 동방의 화려한 시각세계는 유럽 미술이 새롭게 도약하는 데 큰 자극을 주어 이것이 고딕양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우선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난 뒤에 봉건제가 성립되면서 왕권이 위협받는 상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를 마뉴 같은 왕들은 종교를 꺼내 들게 되었는데, 신하와 백성들이 기독교를 믿게 함으로써 자신의 통치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교황이 직접 왕관을 씌워 주어 신성한 권위를 부여해주는 의식을 가졌다고 하는데, 그 모습을 그린 것이 바로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라파엘로의 "사를 마뉴의 대관식"이라 한다. 게르만 민족의 왕 샤를 마뉴에게 높은 제단에 위치한 교황이 왕관을 씌워주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은 로마의 영광을 알리는 웅장하고 거대한 석조 건물로 만들어지는데, 2층 회랑과 아치가 특징이라고 한다. 이렇게 2층 회랑을 만들며 창이 막혀버렸기에 실내가 어두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로마네스크 양식은 지역성이 강해 통일된 양식이 없고 지역마다 개성이 강하지만 공통적으로 교회 건물에는 앱스 뒤쪽에 원형 회랑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미사가 진행되고 있어도 순례객이 방해 받지 않고 원형 회랑을 따라 교회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만들게 된 것이라 한다.그 당시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조각이 매우 소극적으로 활용되었는데, 11세기에 교회 문 위 혹은 기둥 위에만 겨우 조각상이 들어갔다고 한다. 전형적인 중세의 교회 정면 팀파눔에는 예수와 신약성경 4복음서 저자 네 명이 등장하는데, 중세에 인간의 몸은 죄의 근원으로서 청동문 조각에서 아담과 이브가 몸을 가리고 있는 자세라든가 불분명하게 표현된 신체를 보면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보이던 인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신감과 과시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때의 조각들은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일화와 기독교 교리 등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것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노르만족의 유럽 내륙으로의 이동으로 인해 그들이 가진 개방성에 따라 다양한 지역 양식들이 결합되게 되었는데, 노르만족이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거대한 석조 건축이 영국 곳곳에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십자군 전쟁 중 수많은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에 가보게 되었으며, 거기서 비잔티움 제국의 화려함에 압도당했다고 한다. 또한 시칠리아 섬은 12세기 초 노르만족의 지배 아래 안정기를 맞으며 여기에 노르만 왕궁과 성당이 세워졌는데, 이슬람식 장식도 많이 섞인 건물을 만들었다고 한다.피사의 대성당은 이러한 시칠리아의 팔레르모를 약탈해서 여기서 얻은 전리품으로 지었고, 피사 대성당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중부 지역 성당은 대부분 형태가 단순한 편이고 기하학적으로 다듬어져 있는 게 특징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토스카나식 로마네스크 양식이라 언급하고 있는데, 성당 정면에 위아래로 모두 4단의 아케이드를 넣어 정면이 화려해 보이도록 꾸민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라 한다. 피사의 종탑도 6단 아케이드 형식이며, 피사의 세례당은 건축 기간이 길어지면서 아래는 로마네스크 양식이지만 위쪽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세례당은 예루살렘의 예수 성모 교회와 매우 유사한 구조로 둥근 내부 공간을 따라 원을 그리며 서 있는 기둥과 원형 기둥과 사각 기둥이 규칙적으로 배치되고 있는 게 특징인데, 피사는 1차 십자군 원정에 적극 가담한 덕택에 피사의 주교가 새로 세워진 예루살렘 왕국의 초대 대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고딕 양식의 성당의 특징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두 개의 종탑이 들어간 정면은 프랑스 고딕 성당의 표준이며, 첨두아치, 늑골궁륭, 공중부벽이 고딕 건축의 3요소라 말한다.이 성당들은 천장과 가까운 위쪽으로 갈수록 실내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더 많아지는데, 천장 바로 아래까지 창이 줄지어 들어가 있고 위쪽으로 갈수록 크기가 조금씩 더 커지기 때문이라 한다. 그리고 석재로 만들어진 뾰족한 성당이기 때문에 성당 전체가 커다란 울림통이 되어 탁월한 음향 효과를 만들어낸다고 언급한다. 위가 둥근 반원형 아치가 로마네스크 건축, 끝이 뾰족한 첨두아치는 고딕 건축의 특징이란 말이다. 높은 건물을 지을 경우 반원형의 둥근 아치를 활용하면 힘이 양 옆 방향으로 퍼져나가서 기둥을 더 굵게 만들거나 촘촘하게 세워야 하지만, 첨두아치를 사용하면 힘이 양 옆보다 아래 기둥 쪽으로 집중되어서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을 넓게 배치해도 되고 둥근 아치를 쓸 때보다 가느다란 기둥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천장의 경우 구조적으로 꼭짓점 하나에 늑골이 여섯 개 이어지는 6분 볼트보다 꼭짓점 하나에 늑골이 네 개 연결된 4분 볼트가 더 안전한데, 4분 볼트에는 X자 매듭이 두 개이고, 6분 볼트에는 한 개이기 때문이라 한다. 4분 볼트가 매듭이 많은 만큼 더 견고하고 튼튼하고, 6분 볼트보다 4분 볼트가 더 빠르고 경쾌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질의 응답식 강의 형태의 이야기가 전개되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미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은 물론 미술에 담긴 역사, 정치, 경제, 예술의 흐름을 쉽고 재미있게, 또한 깊이 있게 다룬 책이다. 일대일 강의 형식으로 마치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 듯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책장을 앞뒤로 넘겨가며 그림을 찾을 필요 없이 독자의 시선의 흐름에 맞추어 그림을 배치했다. 소장 가치가 있는 엄선한 작품 사진과 일러스트,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후련하게 풀어주는 적절한 질문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그렇다고 책의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책의 저자이자 미술사학계의 권위자인 양정무 교수는 한 권의 책 안에 방대한 정보와 다양한 관점을 모두 담아냈다. 꼭 알아야 하는 기초적인 미술 지식은 물론 학계를 선도하는 최신 이론을 소개하고, 유명한 미술작품부터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한국의 미술까지 최대한 다양한 정보와 이론을 담았다.인기 대중 강연자이기도 한 저자의 강의를 따라가다 보면 이 모든 방대한 지식이 자연스레 이해된다. 독자들은 어느 순간 친절하고 박식한 가이드와 함께 미술의 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권에서는 흔히 암흑기로 알려진 유럽의 중세가 사실은 찬란한 빛의 미술을 꽃피운 시대였음을 이야기한다.

I 로마네스크 미술 - 신을 찾아 순례를 떠나다
01 세계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유럽
02 종교적 열정의 시대
03 길 위에서 탄생한 로마네스크
04 지상과 천상의 권력투쟁

II 노르만 미술 - 십자군이 된 해적
01 바이킹의 시대
02 노르만족의 역사가 시작되다
03 십자군의 시대

III 고딕 미술 - 찬양을 경쟁하다
01 지상에 재현한 천상의 공간
02 더 높게 더 밝게, 그리고 더 완벽하게
03 빛으로 쓴 성경: 창과 스테인드글라스
04 하늘의 이야기를 새긴 고딕 조각
05 우리 곁의 중세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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